출생
출생 1926년 8월 17일 장쑤성.사망 2022년 11월 30일. 96세의 나이에 상하이에서 백혈병 치료중 다발성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덩샤오핑 넘어 가장 장수한 정치인. 중국의 정치인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인 주석이었던 분이다. 1세대인 마오쩌둥-저우언라이, 2세대 덩샤오핑의 뒤를 잇는 중국의 3대 지도자로 분류된다. 후진타오 시대까지는 정치에 큰 영향력을 펼친것으로 아는데 시진핑 주석의 연임으로 독재에 가까운 상황으로 바뀌면서는 예우만 받는것으로 알려졌다.
덩샤오핑 사후
일생의 전반적으로는 도광양회(빛을 가려 어둠에서 힘을 기른다)라는 덩샤오핑의 노선을 이어가다가 1997년 덩샤오핑 사망 이후부터 "대국의 책임있는 자세를 갖자"는 자체적인 라인을 만들어 냈다. 중국의 최고 직책인 국가주석, 중국 공산당 총서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까지 모든 최고직을 겸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단 한가지 국무원 총리만 겸임 한 경험이 없다. 집권기간은 총 15년으로 임기 대부분의 기간은 덩샤오핑을 배후에 두고 있었는데, 덩샤오핑은 대외적으로는 모든 권련을 장쩌민에게 물려주고 평단원으로 남은것으로 보이지만 뒤에서 큰 결정권을 휘두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금의 중국을 만든 장본인
덩샤오핑이 1992년 "개혁 개방만이 중국이 살길이다."라고 강조하며 기조를 바꾸려 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는 공산당 내부 갈등이 심했고 이를 장쩌민 시절에 완전히 청산해서 지금의 중국 기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시장의 개방과 서방문물을 극도로 경계하던 중국에 코카콜라가 들어오고 NBA중계가 가능하게 된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의 수교도 장쩌민의 시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김영삼 대통령, 미국 대통령으로는 빌 클린턴과 만남을 가졌다. 개혁-개방을 외치던 정치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적대순위 1위였던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편이어서 빌 클린턴과 사이좋게 지내려 했다고 한다. 덩샤오핑의 시대에서 천안문 사태를 거치며 집권하게 된 장쩌민은 사회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였고, 국가를 안정화 시키는데 집중했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룬궁탄압
후진타오를 후계로 삼아 정권을 물려줬으나 부정부패로 인해 권력을 잃게 된 후진타오는 물귀신 작전으로 장쩌민과 함께 정치에서 물러나며 시진핑이 정권을 잡게 된다. 여기에는 상하이방 및 여러 권력세력 다툼이 더 깊게 있었는데 이러한 물밑 싸움을 통해 시진핑에게 밀려나게 된 후진타오와 장쩌민은 시진핑의 권력 아래에서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의 정치 시대에 가장 큰 이슈로 기억하는건 파룬궁 탄압인데 너무 잔혹하게 그들을 탄압해서 국내에서도 많은 파룬궁 관련 거리 캠페인들을 열었던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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